정부재정

*이 글은 2022년 11월 10일 국회 기본소득연구포럼 특강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글의 동영상은 유튜브 채널 ‘kcef21’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16_XqvY3vbE 

기본소득은 대선을 앞둔 지난 해 가장 뜨거운 선거 이슈로 떠올랐던 주제다. 세금, 복지 등 재정 전반의 핵심 이슈를 다룬 나의 책 <재정전쟁>에서도 제1장에 등장한다. 하나의 정책 사안을 넘어서 ‘복지철학’, ‘복지재원’, ‘정치적 이해관계’ 등 재정의 핵심 측면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기본소득 문제를 두 장에 걸쳐 다루었다 (1장, 20장). 특히,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재원 조달 방식(국토보유세나 탄소세를 이용한 목적세 방식)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목적세는 잘 사용하면 유용한 경제적, 정치적 효과를 낳지만, 자칫 제도를 복잡하고 경직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대선 패배와 함께 기본소득 논쟁은 언론의 헤드라인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얼마 전 국회 기본소득연구포럼에서 책에 나온 내용을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오히려 지금은 기본소득 논쟁을 둘러싼 정치적 부담이 덜한 상태라 다들 편한 마음으로 포럼에 참석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GDP의 13%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인 20%에 많이 못미친다. 복지관련 세금을 포함한 조세부담률 역시 GDP의 28%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33.5%) 보다 5% 정도 모자란다. 결국, 향후 안정적인 복지국가로 성장하려면 재원 확보가 필수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조세제도는 변변한 개혁없이 해마다 부분적 짜집기 개편을 한 덕에 원칙 없이 복잡하기만 한 누더기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세율인상 등 무리한 증세 시도를 하면 비효율과 불공평이 급속히 증가할 수 있다. 정부 서비스에 대한 납세자의 불만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세저항 같은 정치적 비용도 작지 않을 것이다. 

결국, 체계적인 세제개혁 없이 획기적인 복지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인구 상위 10%가 소득 50%를 차지하는 양극화 시대에서는 부자들이 조세수입의 상당부분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자는 조세회피 및 조세저항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증세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들의 ‘보편적 복지’ 개념을 원용할 필요가 있고, 기본소득도 그런 체제로 가기 위한 하나의 기준점 (Reference point)으로 보자는 것이다. 당장의 득표를 위해 합리적 재원과 청사진 없이 서둘러 도입하기보다는 전체 재정 및 복지체계의 틀안에서 고려하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나 장점을 살리는 길이다.

포럼에서는 기존 언론이나 전문가 서클에서 자주 언급되는 재정 원리 중 엉터리가 적지 않음도 지적했다. 특히, ‘소득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주장은 탐관오리들이나 좋아할 얘기다.  소득은 중요한 세원이지만 어차피 재산, 거래 등 다양한 세원의 하나일 뿐이다.  소득이 있으면 정부가 무조건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제적 차원에서 조세원칙은 단순 명료하다. 주어진 세금을 거둘 때, 자원 왜곡 효과(즉, 효율비용)가 최소화되어야 하고, 세부담이 공평하게 배분되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능력원칙(ability to pay)과 편익원칙(benefit principle)이 경제여건에 맞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차원의 조세원칙은 ‘세금은 국가와 시민, 혹은 정부와 납세자 간의 암묵적 계약’ 이라는 점이다. 납세자는 자신이 내는 세금만큼 반대급부로 양질의 정부서비스를 받고 싶다. 무능한 정부가 세금을 올리려 하면 조세저항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포럼에서는 또한 정치이념에 따라 실제 정부크기가 결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정 시점, 특정 국가의 정부크기는 세금을 거둘 기반이 얼마나 탄탄하냐와, 그 시점을 관통하는 시대조류가 핵심이다 (<재정전쟁> 5장, ‘큰 정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소득연구포럼에는 진보와 보수 의원들이 모두 참여하지만, 그래도 핵심은 진보계열 의원들이다. 그들이 아무리 큰 정부와 이를 위한 증세를 원한다 하더라도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고, 사회적 비용이 큰 방식이라면 실현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세계화와 시장중심을 강조하던 작은 정부의 시대가 저물고, 적극적 정부개입을 필요로 하는 큰 정부의 시대로 시대조류가 바뀌고 있다. 집권당의 정치이념과 상관없이 복지나 환경, 전략산업 지원에 대한 지출 수요는 늘 것이다. 증세는 불가피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알량한 진보-보수 이분법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유능한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 세금을 자기 쌈짓돈처럼 생각하며, 자신들이 필요하면 올리면 된다라 생각하는 사고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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